제주 서귀포낚시인 원성조 씨는 제주를 대표하는 벵에돔낚시 고수다. N·S의 갯바위 프로스탭으로 활동 중인 그는 많은 제주도 고수들 중에서도 단연 톱클래스로 꼽힌다. 여러 낚시대회에서 우승하며 객관적으로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내가 원성조(50) 씨의 명성을 처음 듣게 된 것은 7년 전이다. 사실 그의 명성에 비해 이름을 접한 것은 꽤 늦은 편인데, 25년 넘게 제주도 취재를 다녔지만 서귀포보다는 제주시 고수들과 인연이 많았던 게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범섬의 어느 포인트로 기억한다. 원래는 다른 낚시인을 취재하러 갔다가 함께 출조한 원성조 씨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만의 호쾌하고 깔끔한 원투 캐스팅 동작, 빠르고 섬세하게 채비를 다루는 노련미, 장타를 치고도 물속 찌멈춤봉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읽고 챔질하는 현미경 시각에 깜짝 놀란 적 있다. 그래서 언젠가 단 둘이만 내려 낚시도 하고 취재도 해보고 싶었으나 이후로 기회를 잡지 못하고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원성조 씨는 현재 한국프로낚시연맹 본부상벌위원, 제주지부 경기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낚시문화연구회 제주지부 회원(직전 회장), 쯔리켄FG 제주지부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원성조 씨가 실력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유명세가 높지 않은 이유는 과묵하면서도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을 들 수 없다. 원성조 씨를 잘 아는 제주 낚시인 강병철 씨는 “원성조 씨는 누가 먼저 테크닉을 물어보면 답을 해주지만 먼저 나서서 코치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목소리도 작고 튀는 성격도 아니다보니 자연스럽게 매스컴과도 인연이 없었습니다”라며 그의 성격을 설명했다.
토너먼트 다수 우승으로 입증한 낚시실력
원성조 씨의 낚시 실력은 낚시대회 다수 우승이라는 객관적 지표로도 입증된다. 가장 최근 기록은 엔에스 블랙홀컵으로 열린 2019 한국프로낚시연맹(회장 박동수) 왕중왕전 우승이다. 감성돔을 대상으로 완도 청산도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총 80명이 참가했다.
2014년과 2017년에 거제도에서 열린 한국프로낚시연맹 엔에스 블랙홀컵 벵에돔낚시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으며, 작년 가을에 대마도에서 열린 WFG 한국본선대회에서도 우승해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이처럼 원성조 씨는 고향은 벵에돔낚시의 본고장 제주도지만 어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연달아 우승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낚시인들은 벵에돔이 아닌 감성돔낚시에서도 우승을 차지했한 점을 높이 사지만 원성조 씨는 그 칭찬에 대해서는 무덤덤하게 답을 한다.
“저는 19살 때인 1990년도 무렵부터 찌낚시를 했습니다. 아버님이 어선을 갖고 어장 일을 하셔서 어릴 때부터 바다와는 인연이 깊었죠. 찌낚시를 처음 배울 때는 약 5년간 추자도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때 고부력 채비로 감성돔과 참돔을 많이 낚았죠. 그 덕분에 고부력 낚시도 부담 없이 소화하고 있습니다.”
거제도 대회에서도 두 번 우승했는데 제주도 낚시인으로서 남해안 벵에돔낚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낚시의 기본은 비슷하다고 봅니다. 다만 제주도에 비해 남해안 포인트는 조류 흐름이 약해 양어장낚시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한 조류 때문에 어떤 때는 잡어 분리가 쉽고 어떤 때는 어려워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상황변화가 공존하는 제주 벵에돔낚시에 익숙한 낚시인이라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잠길찌낚시를 맹신하지 말기를
지난 8월 22일, 태풍 바비가 지나간 직후 원성조 씨와 함께 우도를 찾았다. 원래는 범섬을 촬영지로 예상했으나 여전히 너울이 심해 비교적 안전한 우도를 찾았다.
우리가 내린 포인트는 성산포항이 마주 보이는 큰동산 포인트. 4~5명이 낚시할 정도로 넓은 공간인데 원성조 씨가 몸담고 있는 낚시문화연구회 제주지부 회원 3명도 함께 내렸다.
물때는 10물. 시간은 오후 1시를 막 넘겨 들물이 시작된 타이밍이었다. 큰동산에서의 들물은 우측에 있는 우도 본섬의 정자 쪽에서 밀려와 큰동산을 거쳐 성산포 방향으로 뻗는다. 그러나 채비를 두 번 정도 흘려보던 원성조 씨가 03찌를 01찌로 바꿨다.
03찌는 쯔리켄사가 독자적으로 표시하는 찌부력으로 대략 투제로(00)와 쓰리제로(000) 사이 부력을 지닌다. 01찌는 제로찌(0) 정도의 부력을 지닌다. 즉 잠길낚시 채비에서 상층 공략 채비로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채비 교체의 이유를 묻자 원성조 씨가 썰물 조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상황은 겉물 수심 이삼 미터까지 우측으로 가지만 속물은 들물(좌측) 방향으로 약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잠길찌를 쓰면 원줄은 상층 조류에 계속 밀리고 찌는 속조류에 잡혀 채비가 전진하지 못합니다. 결국 제자리에 멈추거나 원줄 영향으로 앞으로 끌려오면서 밑밥과의 동조가 불가능해지죠. 그래서 가라앉지 않는 찌를 써서 채비를 상층 조류에 태워 억지로 보내려는 것이죠. 오히려 이 방법이 비중을 가볍게 조절해 온 제 밑밥과 채비를 동조시키기에도 유리합니다.”
원성조 씨는 요즘 낚시인들이 무조건적으로 투제로찌를 선호하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수면에서 1m 가량 잠기는 투제로찌는 벵에돔낚시에 있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상황을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원성조 씨가 찌를 바꿔 던지자 제자리걸음만 하던 채비가 서서히 우측으로 흘러나갔다. 약 40m 이상 흘러가던 찌가 사라짐과 동시에 초리가 지긋이 당겨지며 첫 입질이 들어왔다. 뜰채에 담긴 놈은 35cm가 약간 넘는 긴꼬리벵이었다.
이 방식으로 3마리 정도를 더 낚아내자 드디어 조류가 제 방향인 성산포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들물은 의외로 힘이 좋았다. 만약 물돌이 타이밍이 길어 조류가 오래 멈춘다면 다시 잠길찌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이날 원성조 씨가 올린 가장 큰 씨알인 42cm짜리 긴꼬리벵에돔이 뜰채에 담겼다. 취재날 최대어는 함께 출조한 강국진 씨가 낚았지만 마릿수는 단연 원성조 씨의 압승이었다. 다음은 원성조 씨와 나눈 일문일답.
Q. 아까 낚시점에서 밑밥을 갤 때 보니 분쇄기에 크릴을 넣기 전에 커터기로 잘게 부수는 것을 봤다. 분쇄기에서 자동으로 부술텐데 미리 잘게 부순 이유는 무엇인가.
● 확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금은 수온이 높아 벵에돔의 부상력이 좋은 상태라 최대한 잘게 부수고 있다. 간혹 크릴을 원형 그대로 써야 멀리까지 확산된다고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포인트가 본류와 맞닿아 있을 때의 얘기다. 실제로는 잘게 부숴야 중량이 가벼워 느리게 내려가고 멀리까지 확산된다. 또 내 미끼보다 밑밥 크릴이 작아야 벵에돔이 봤을 때 내 미끼가 돋보일 수 있다.
Q. 추자도는 20대 중반까지만 가고 이후로는 발을 끊었다고 들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 감성돔낚시와 참돔낚시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두 어종의 낚시는 단순하다. 고부력찌로 바닥층 가까이를 노리는 게 기본 테크닉이라 너무 지루하고 긴장감이 없어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나는 추자도에서 낚시할 때 고부력 구멍찌에 납을 추가로 박아 제로부력 상태로 만들었고 그 저부력찌로 전유동낚시를 즐겼다. 추자도 감성돔 포인트는 거의 여밭이라 저부력 전유동으로도 쉽게 감성돔을 낚을 수 있다.
Q. 남해안에서 열린 감성돔낚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도 추자도낚시 경력이 도움이 되었나.
● 물론이다. 안 해 본 사람은 허덕대겠지만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남해안 감성돔낚시에 대해 부담은 없다. 그런데 내가 추자도낚시를 끊은 본질적인 이유는 벵에돔낚시를 더욱 집중해서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찌낚시 대상어종 중 벵에돔만큼 다양한 테크닉이 필요한 어종도 없다. 가장 묘미가 있는 낚시도 벵에돔낚시다. 그런 면에서 연맹이나 각종 단체의 낚시대회에서 4대돔이라 부르는 돌돔, 참돔, 감성돔, 벵에돔을 모두 인정하는 ‘다 잡아식 대회’는 솔직히 흥미가 없다.
Q. 벵에돔낚시 고수가 되고 싶어 하는 낚시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채비, 자신의 낚시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 채비를 쓰면 언제, 어디서라도 고기를 낚아낼 수 있고 응용도 가능한 수준으로 자신의 채비를 완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고기를 한 마리 낚으면 찌의 호수, 봉돌의 무게, 바늘의 크기, 입질 수심 등을 물어보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다. 물론 좋은 방법이다. 그리나 그대로 따라만 해서는 몇 마리 낚은 후 다시 꽝을 맞는다. 결국 물어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이다. 방법은 유일하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남들보다 더 많이 필드에 나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매번 바늘 호수나 봉돌 무게를 묻는다면 그 낚시는 속성으로 따놓은 장롱면허와 다를 게 없다. 계산해 보니 나의 경우 1년에 100회 이상은 출조했다. 타고난 감각도 중요하지만 낚시 실력과 출조일이 비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날 현장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느낀 가장 인상적인 테크닉은 원성조 씨의 한 손 캐스팅이었다. 한 손에 미끼를 꿴 바늘, 다른 한 손에는 낚싯대를 잡고 가볍게 후리는데도 채비가 35m이상 날아갔다. 오랜 세월 반복하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이날 원성조 씨는 엔에사에서 작년에 출시한 알바트로스 VIP 1-50대를 사용했는데 이 낚싯대는 나도 같은 길이를 갖고 있는 낚싯대다.
차이점이라면 내 낚싯대는 여전히 광택이 찬란한 반면 원성조 씨 낚싯대는 1년도 안 돼 손잡이 부분 도장이 닳아 하얗게 반질해진 점이다.
도장 불량이 아니다.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출조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어떻게 하면 벵에돔낚시 고수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원초적이고 실전적인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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