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을 뿐, 먹게 하는 것이 기술
예를 들어 지금이 수온이 가장 낮은 한겨울이라고 가정해 보자. 추운 겨울엔 사람도 따뜻한 곳에 머물길 좋아하는 것처럼 벵에돔도 보온효과가 좋은 깊은 수심, 흔히 바닥층이라고 불리는 저층에 주로 머물게 된다. 이런 시기의 낚시기법은 여름보다 깊은 수심을 노리는 낚시가 위주가 되고, 집어제도 비중이 무거운 동계용이 애용된다(물론 지역, 포인트 여건에 따라 수심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순 있다). 그러나 활성도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요즘 같은 고수온 상황에서도 벵에돔이 바닥층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활성도=바닥층’ 이란 고정관념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결국, 입질이 없으니까 좀더 깊게, 그래도 안 되니까 바닥까지 훑는다는 식으로만 문제를 풀어나가는 우를 범하게 되는데, 저활성 상태를 ‘먹성’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문제를 보다 수월케 풀어나갈 수 있다. 지난 6월 중순경에 개최된 한일친선 벵에돔토너먼트가 좋은 예다. 총 50명의 선수가 참가해 이틀 동안 배출된 벵에돔은 고작 30여수 안팎. 그나마 한 사람이 4~5마리씩을 낚은 것을 감안하면 거의 몰황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배출된 벵에돔의 대부분이 띄울낚시에 올라왔다는 점이다. 필자의 경우 경기 초반엔 총 2발 반 수심을 준 채비로 22~23cm 벵에돔 3마리를 예선전에서 낚아냈고, 후반에는 찌멈춤봉을 목줄까지 내린 1발 반 수심 채비로 27cm짜릴 낚아내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가장 얕은 수심에서 낚은 27cm 벵에돔은 대회 기간 중에 낚인 최대어였다. 기준치엔 못 미쳤지만 매 경기마다 벵에돔을 낚아내며 준준결승까지 진출했던 야마모토 명인 역시 총 수심 1발 반을 준 띄울낚시 채비로 대부분의 벵에돔을 낚아냈다. 대회 2위를 차지했던 일본 선수는 목줄찌 채비로, 3위를 차지한 허창영(제주) 선수도 포말 속에서 유영하는 벵에돔을 발견하곤 상층 띄울낚시로 벵에돔을 낚아냈다. 이와는 반대로 ‘활성도가 약하다’며 전층채비로 전유동낚시를 구사하거나 잠길조법을 구사한 선수들은 대부분이 몰황을 맞아 대조를 이뤘다. 결국 정말로 저활성도 상태(심지어 바닥층에 머물고 있다고 하더라도)의 벵에돔을 낚고 싶다면 무작정 수심을 깊게 주는 쪽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벵에돔이 미끼를 먹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는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하겠다
채비의 굵기·크기·색상 등도 입질의 변수
가장 쉽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목줄의 호수를 낮추는 것이다. 만약 1.2호 목줄을 쓰던 상황이었다면 1호나 0.8호 내려 쓰는 것이 순서. 이 방법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대처법일 것이다. 그래도 여의치 않다면 이번엔 지금까지 써오던 목줄 대신 새 목줄로 갈아 써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한 번 오픈이 되어 오랫동안 조끼 주머니 속에서 뒹굴던 목줄과 새 목줄은 신선도(?) 및 투명도 측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본의 토너먼트 명수 야마모토 명인이 알게 모르게 강조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목줄의 투명도 유지다. 목줄은 만지면 만질수록 마찰이 발생, 점차 우유빛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수차례 미끼를 갈아 꿰며 잡은 목줄 부위를 유심히 살펴보라. 분명히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성돔낚시라면 몰라도 벵에돔낚시에선 이런 백지장 한 장 차이가 뜻밖의 결과를 낳곤 한다. 바늘도 예외일 수 없다. 가장 기본적인 대처는 역시 크기를 줄여나가는 것. 그 다음은 색상의 변화다. 빨강바늘·분홍바늘·검정바늘·은색 바늘·황동색 바늘 중 오늘은 어떤 색상이 벵에돔에게 어필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그림3> 참조). 지금이라도 자신의 바늘통을 들여다보라. 과연 몇 가지 색상의 바늘이 들어있는가.그 다음 변수로 미끼를 꼽을 수 있다. 일단 바늘의 크기와 엇비슷한 크기의 크릴을 사용하는 것이 제1 관건이며, 그래도 여의치 않을 땐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고 꿰는 방법이 있다.그래도 입질이 시원찮으면 아예 껍질까지 벗겨 쓰며, 벗긴 살점을 약간 짓눌러 먹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때론 복고풍이 유행할 때도 있다 저활성도 벵에돔은 바닥에 있다’는 통념에 대한 반론인 동시에 기술적인 극복법을 설명한 것이다. 이번엔 또 다른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부분을 집고 넘어가 보자. 어쩌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몇 년 전 민병잔씨는 일본의 어류 생태학 서적 중 ‘물고기의 행동학’이라는 책을 읽고 매우 공감한 적 있다. ‘우리 낚시꾼들은 혹시 물고기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글의 내용을 함축시켜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냥에 총이 처음 이용됐을 땐 ‘땅!’ 소리가 나며 멧돼지가 쓰러져도 옆에 있던 무리들이 도망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땅!’ 하는 소리가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호임을 학습하게 된 이후부터는 이젠 소리가 아니라 총만 봐도 줄행랑을 치게 됐다는 얘기다. 제로조법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전국 어느 바다, 아니 일본 어디를 가도 기가 막히게 먹혀들었다(반면 제로찌가 등장하기 이전 3B나 5B로도 잘 낚이던 벵에돔들은 좀처럼 기존 채비로는 낚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제로조법도 유사한 전철을 밟고 있다. 그렇게 고기가 많다던 남녀군도, 대마도도 예전과 동일한 기법을 들이대선 만족할 만한 조과를 거두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우리 낚시꾼들은…’의 내용 중에는 이런 실험 결과도 있다. 감성돔과 벵에돔 대신 다른 종류의 물고기를 수조에 넣고 그 중 한 마리에게 집중적인 위협을 가했더니 나중엔 그 놈뿐 아니라 다른 무리들까지 함께 겁을 먹고 움츠리더라는 것이다 동물의 학습 능력이란 사람과 일대일로 만나는 개체뿐 아니라 다른 개체들에게까지도 쉽게 전이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런 ‘저활성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사고의 전환’이다. 즉 제로 채비로 안 되면 1호 채비로, 무봉돌 목줄 채비로 효과가 없다면 과감히 B나 3B 같은 봉돌을 덧붙여 전혀 다른 차원의 낚시를 시도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편도선염을 자주 앓아온 필자는 G제약회사에서 발매한 테라마이신이란 항생제를 자주 복용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필자에겐 아주 잘 받는 약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 더 좋은 신약이 쏟아져 나오면서 더 이상 그 약을 복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증상이 재발해 다시 병원을 찾아 증상을 논의하자, 난데없이 담당 의사는 초기에 복용했던 약을 권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가 “그건 아주 오래 전에 나온 약인데요”라고 대꾸하자, “같은 약을 오래 복용하게 되면 인체에 내성이 쌓이게 되어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그럴 땐 한동안 복용하지 않던 약을 복용하면 의외의 효과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였다. 이 정도면 “제로찌에도 안 들어오던 입질이 왜 1호찌엔 들어오는 겁니까?”라는 의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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